한글로 인도여행 1998 - [1] 인도로 가는 길

 

이전글

목록보기

다음글

< 인도로 가는 길 >

 

- 요 며칠 사이에 말이에요. 계속 이상한 꿈을 꾸곤 해요. 어디서 본듯한 거리에서 제가 어느 장사꾼이랑 마구 싸우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내가 하는 말은 한국말이 아니라 아주 유치한 수준의 인도말이죠. '끼뜨나(얼마냐?)' 하고 물어보면 '떨티(30) 루피스'라는 대답에 '마항가해(비싸다!)'라고 찡그리고 다시 '깜까로나(깎아줘!)'라고 하는거죠. 그런데 절대 상대방은 안깎아주죠. 그래서 계속 다투다 보면 잠에서 깨어나요.

대학 4학년의 여름방학은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들 합니다. 그것이 요즘처럼 IMF시대 하의 취업 대난 속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죠. 모두들 영어를 비롯한 어학과 여러가지 취업준비로 고3 수험생들보다 더 바쁜 생활을 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그런 4학년의 여름방학을 몇주일 앞두고 갑자기 인도행을 결심했습니다. 무조건 인도를 가겠다고 결심했지만, 모아 놓은 돈도 없는 놈이 인도를 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참 많았습니다.

일단 비행기표는 작년에 비해 가격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50만원이었죠. 작년엔 45일 오픈티켓이었는데 올해는 두달 오픈티켓이랩니다. 모아둔 돈을 톡톡 털어서 일단 비행기 표를 샀습니다. 이제 체제비가 문제였습니다. 두달 오픈티켓이었으니 무조건 여행기간을 50일로 잡았습니다. 하루에 만원을 기준으로 50만원이 필요했습니다. 아니, 환율을 감안하면 그보다 더 큰 돈이 필요했지요. 하지만 그 돈을 구할 길은 암담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는 정말 싫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놈이 인도를 간다고 폭탄 선언 한것도 부모님께 못할 짓이었는데 어떻게 돈을 달라고 손을 벌린단 말입니까?

그래서 가상으로 만들어 둔 시나리오 하나를 실행하기로 했습니다. 제 다이어리에 적힌 '구걸여행'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것이죠. 최악의 상태일때 써 먹으려고 꾸며둔 시나리오가 이렇게 빨리 써먹힐 줄은 몰랐습니다.

뜻밖에도, 저의 당돌한 '구걸'에 많은 분들이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하루에 1만원, 최대 이틀까지만 도와 달라는 편지. 보답은 돌아와서 기행문으로 대신하겠다는 내용.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었지만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주셨고 규정(?)을 어기고 많은 돈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친구녀석도 이틀을 책임지겠다고 돈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돈이 조금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한 친구에게 목돈을 빌렸습니다. 인도를 다녀와서 갚는다는 조건이었죠. 그렇게해서 500달러를 마련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부모님은 모르고 계셨습니다.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india98_start.jpg
1998년 7월 1일
떠나기 직전 집에서 기념사진
가방의 무게가 욕심의 무게

 

그렇게 인도에 저는 또다시 발을 들여 놓고 있습니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갑자기 웃음이 나옵니다. 입이 찢어져라 빙긋이 웃으며 공항을 빠져 나옵니다. 이상하게 웃음이 그치질 않습니다. 기분이 너무나 좋습니다.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꼴라바 구역까지 어떻게 가나 걱정했는데 사업을 하시는 아저씨의 도움으로 편하게 승용차를 얻어타고 갈 수 있었습니다. 시작부터 아주 좋은 일이 생기는군요.

눈에 익은 거리에 들어서니 더욱 기분이 좋습니다. 다시 인도의 냄새를 한껏 들이켜 봅니다. 특유의 냄새가 온몸에 스며듭니다. 그렇습니다. 반복되었던 꿈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다시 인도에 가야만 한다는... 저는 꿈속의 그 거리에서 흥정을 합니다. 깜까로나(깎아줘), 마항가해(비싸다구), 헤이 프랜드, 플리즈!

여행일자 : 1998년 7월 2일
1998.8.13.
한글로.

참 고 : 한글로가 인도를 가기위해 쓴 글

  

   

이전글

목록보기

다음글